낭송가 송미영 / 빈집의 약속 / 문태준 시

빈집의 약속 / 문태준 시 / 낭송 송미영

지형열

작성 2020.08.04 23:33 수정 2020.08.04 23:33

빈집의 약속 / 문태준 시 / 낭송 송미영

마음은 빈집 같아서
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
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

볕이 보고 싶은 날에는
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
들어와 살기도 하였다

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
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

겨울 밤이 방 한 켠에
묵은 메주를 매달아 두듯
마음에 봄가을 없이
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

그러나 하릴없이
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
나에게는 행복하였다

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,
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
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
울울창창한 고요를
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

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
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
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

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 앉았다 나가면 그뿐,
마음은 늘 빈집이어서
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
다른 것으로 메워졌다

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
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 앉히는
착한 사진사 같은 것

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





Copyrights ⓒ 한국의시.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지형열뉴스보기